불교탐구 - 제2부 삼보(三寶) - 3장 석가모니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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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탐구 - 제2부 삼보(三寶) - 3장 석가모니 부처님

마이템플 0 2608
제 2 부  삼 보 (三 寶)
 
제 3 장  석가모니 부처님
 
1. 삼신설 (三身說)
 
  (1) 법신 (法身)
 
  ‘부처님’이라는 명칭은 인도의 범어인 붓다(Buddha)라는 말이 중국에서 불타(佛陀)로 가차(假借)되었는데,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부처, 부처님으로 바뀌어 불려진데서 유래한다.
 
원래 붓다라는 말은 ‘눈을 반짝 뜨다’라는 말로 결국 진리에 눈을 떠서 진리와 한 몸이 된 자라는 의미이다. 즉, ‘진리를 깨달은 자’이다.이렇게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부처님이 존재한다고 본서 맨처음에 언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법은 대승불교시대에 와서 정립된 삼신설(三身說)에 의한 것이고, 전대의 소승불교에서는 불멸후 석존께서 곁에 안계시게 되니, 실존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색신(色身)이라고 보고, 이와 구별하여 그가 설한 진리의 당체(當體)를 법신(法身)이라고 생각하여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색신과 법신으로 둘로 나누어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소승불교의 이신론(二身論)이라고 함을 참고로 알아둔다.
 
삼신(三身) 가운데 법신이란 참다운 진리를 깨달은 분, 완전히 진리를 깨닫고 실천한 사람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진리 그 자체’가 되셨던 분이다. 이러한 연유로 부처님은 예배와 공양을 받고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 되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 즉 진리의 본체이신 부처님을 가리켜 우리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구별하여 칭한다. 법(法=진리)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이며 따라서 법신(法身)은 곧 깨달음이며 우주의 근원이며 진리가 발현되는 몸으로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법신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안 계시는 데가 없으며, 부처님이나 우리 모두도 갖추고 있는 것이어서, 누구든지 성불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 아니고 수없이 많을 수 있으며, 이름은 각기 달라도 결국 뿌리는 하나의 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2) 보신 (報身)
 
  석존도 진리의 몸인 법신으로부터 과거의 무수한 수행과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아 성불(成佛)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원만한 불신(佛身)을 공덕의 보답으로 석존과 같은 부처가 된다고 하여 보신(報身)이라고 한다. 보신불은 32상(相)과 80종호(種好)을 갖추고 계신데, 절대 완전한 진리의 몸인 법신이 보신을 통해서 표상된 것이다.
 
우리는 보신의 대표적인 부처로 아미타불을 꼽는다. 아미타불은 법장(法藏) 비구의 48가지 원력에 의해 현현한 몸이시다. 그 원력에 의해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생긴 것이다. 이외에도 중생의 원(願)에 따라 미륵불, 연등불 등 수많은 부처님은 보신(報身)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온갖 수행의 결과로 생긴 몸이라고 하여 보신불(報身佛)이라 하며, 중생들의 살아갈 방향과 귀의처를 알려주신다.
 
(3) 화신 (化身)
 
  중생구제를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화신(化身)이라고 한다. 법신과 보신불 외에도 역사적으로 실존 하시는 부처님이 있다. 우리는 부처님하면 맨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석존은 인류 역사상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스스로 진리 자체가 되신 최초의 성자로서, 이 분에 의해 불교가 생겨났으니 당연할 것이다.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뜻만 알아두자면, ‘샤캬무니’에서 온 것으로 ‘샤캬’는 종족의 이름이고 ‘무니’는 성자(聖者)라는 말이다 즉,샤캬족에서 태어난 성자라는 의미다. 이 분은 화신불(化身佛)로서, 실은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이시다. 석존은 2천 5백여년전에 인도에서만 탄생하신 분이 아니라 전생의 원력에 의하여 일천백억의 혹성에 동시에 일천백억개의 몸으로 태어나신 연유이다.
 
이러한 삼신불(三身佛)은 하는 일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몸에서 비롯된 일신(一身)으로서, 모양은 다르나 그 본질은 하나의 법성(法性)에서 나와 인연따라 달리 수많은 부처님이나 보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법성이 비어 있으되 한없는 공덕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는 일도 광대하고 깊은 덕으로 그 경계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 다만 묘유(妙有)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점차 체계화시켜 나갔다. 부처님은 석가모니 한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육신으로 오셨던 부처님과 말씀으로 남은 부처님을 둘로 나누어 전자를 색신(色身), 후자를 법신(法身)이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 말(말씀)이 부처라고 하니 아무래도 이상하여 생각해보니 부처님이 돌아가서 안계신 것이 아니라, 이름도 형상도 없는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우주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는데 일치를 보았다.
 
이러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의 생명력으로서의 본체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체(體)로서의 부처님 곧 법신불이며, 체(體)에서 상(相)과 용(用)이 생겨나듯, 이 부처님으로부터 어떤 모습을 나타내고 어떤 작용을 하는 부처님을 이름하여 보신불과 화신불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삼신(三身)사상이 생겼다.
 
그렇지만 체(體)와 상(相)과 용(容)이 하나를 이루듯, 결국 삼신도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부처님의 세가지 측면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으니, 누구나 갖추고 있는 우리 자신의 불성(佛性)을 인식하여 갈고 닦아야 한다. 우리도 법성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해보인 불교의 개조(開祖)이신 석존의 교설을 따라 함께 걸어가야 한다.
 

 
2. 연등불 수기 (授記)*
 
  어느 때 선혜(善慧)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생사의 구렁속에서 방황하는 자신과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발심하여 큰 행원을 세우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끝없이 많사오매 내가 부처가 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도 건지리라”하는 서원을 세우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한편 일을 하고 보수를 아껴 은전 500냥을 모았다.
 
이때 연등부처님께서 이 나라에 오시게 되었다. 백성들은 꽃을 바쳐 공양하려고 했다. 선혜 수행자도 이 소식을 듣고 꽃을 구하려 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꽃을 찾아 거리를 헤매이던 중에 한 궁녀가 푸른 연꽃 일곱송이를 감추어 가는 것을 보고 겨우 사정한 끝에 은전 500냥을 주고 다섯 송이를 사게 되었다.
 
마침내 연등부처님께서 거리로 행진해 오심에 선혜도 시민들과 더불어 푸른 연꽃을 바치셨다. 그때 연등부처님께서 나아가시는 길 앞에 진흙탕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선혜는 입고 있는 사슴가죽옷을 벗어서 진흙탕 위에 덮고 그것도 부족하자 엎드려 머리카락을 풀어서 깔고 그 위로 부처님께서 걸어가시도록 했다.
 
이것을 보신 연등부처님께서는 선혜를 향하여 찬탄하셨다. 그리고 말하기를 “장하다, 선혜여! 그대의 보리심은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같이 지극한 공덕으로 그대는 오는 세상에 결정코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부르리라”(불본집행경)하셨으니 이것을 흔히 「연등불 수기」라 한다.
 
* 수기란 이마를 만지면서 미래 일을 증명한다는 것인데, 부처님께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등 제자에 대하여 미래의 증과(證果) 곧 성불하리라는 내용을 자세히 말씀하신 교설이다.
 
 
3. 팔상성도 (八相成道)
 
  석존의 행정은 크게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어 29세때 출가하여 35세때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도(成道)’를 이루셨고, 녹야원에서의 최초의 ‘전법륜(轉法輪)’을 시작하여 그 후 45년동안 각지에서 설법을 계속하시어 교단을 육성하셨으며, 쿠시나가라에서 80세의 일기로 입멸(入滅)‘하셨다. 이 네가지 사적(史蹟)이 있었던 장소는 그때부터 불교의 4대성지가 되었다.
 
 여기에 석존의 전생이야기와 몇가지 사건이 덧붙혀져서 팔상(八相)이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팔상성도(八相成道)*이다.
 
* 통도사 영산전에 가면 팔상도가 있고, 법주사에도 팔상전이 있다.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부처님은 그 먼 과거 시절 연등불로부터 수기(授記) 받으신 후 보살의 행원을 계속하다가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에서 호명(護明)보살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시던 중에 우리 지구 염부제(閻浮提) 중생을 위해 인간의 몸을 빌어 하강하셨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년전에 중부 인도 카필라 (지금의 네팔 타라이 지방)라는 왕국의 마야왕비에게 눈이 부신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신기한 꿈결로 입태하시니 육신의 부처님 이전의 무량광전 법신불의 시현이다.
 
부왕은 정반왕(淨飯王)*이다. 도솔래의상이라는 말은 도솔천(=兜率天)이세 내려오시다는 뜻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는 사바세계인데, 이 안에 우리가 사는 중생계가 있고 이것은 다시 욕계 (욕망에 의해 살아가는 세계), 색계 (욕망은 크지 않으니 아직 육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색신에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세계), 무색계 (욕망과 육신은 벗어났으되 아직 미미한 집착이 남아있는 선계의 중생들이 사는 세계)라는 삼계로 이루어져 있다.
 
삼계는 다시 각각 여러개의 세계로 구분되는데, 하계(下界)인 욕계에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제일 밑바닥에 있는 지옥에는 제일 욕심 많은 중생들이 가는 곳이다. 그 다음은 아귀로서 굶주린 중생들, 본능적 욕구에 가득찬 중생들이다.
 
축생은 깊은 판단력과 이해력이 없이 본능에 따라 사는 중생들이다. 아수라는 깊은 판단력과 이해력이 없어서 선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항상 분노에 차서 사는 중생들이다. 그 다음이 인간, 천상(天)인데, 여기까지만 올라와도 대단한 것이다. 천상에는 다시 6개의 층이 있는데 이를 6욕천(六欲天)이라 한다. 이 6욕천의 맨 밑에 사천왕(四天王)이 있는 사왕천(四王天)이 있다.
 
신화적으로 생각한 것인데,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 수미산(須彌山)이다.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에 사천왕이 버티고 있으면서 네 방향을 지킨다. 이 사왕천 위의 수미산 꼭대기에 33천이 있는데, 이것이 도리천(忉利天)이다 이곳의 수장(首長)이 제석천(帝釋天)이다.

도리천 다음에는 야마천(夜摩天)이 있다. 인도신화에서 최초로 죽은 사람이 ‘야마’라는 남자인데 그가 바로 염라대왕이다. 즉 야마천은 죽은 사람들의 나라이다.그 다음 4번째가 도솔천, 그 다음이 화락천(化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화락천은 자기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노는 곳이고, 타화자재천은 타인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신들의 나라이다.
 
이상이 욕계에 있는 6욕천이다. 이중에서 도솔천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유는 내생에 부처가 될 사람은 바로 도솔천에서 내려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존도 도솔천에서 내려오셨고 56억 7천만년뒤에 부처로 오실 미륵보살도 현재 도솔천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도 부처가 되기 전에 하나의 과정으로써 수행을 하다 보면 부족함이 없는 모든 것이 만족스런 경지에 가게 된다.
 
그래서 지족안분(知足安分)하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면 도솔천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또 한편, 천상계에 속하는 색계와 무색계에도 각각 18천과 4천이 있어 욕계의 6천과 합쳐 중생계의 천당은 모두 28천이 있게 된다. 저녁에 28번 범종을 치는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러한 색계와 무색계는 수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으로서, 욕심이 점차 줄어들면서 체험하게 되는 세계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사바새계에 오시기 전에 도솔천에서 왕으로 천상의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호명보살이시다. 이분이 지상에 태어나 도를 닦아 정각을 이룰 원을 세우니 인간계에서 가장 복이 수승한 왕과 왕비를 찾아보니 바로 인도 카필라국의 왕과 왕비임을 알고, 흰 코끼리가 도솔천에서 내려와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모습을 현몽한 뒤 태중에 들어온 것을 ‘도솔래의상’이라고 한다.
 
* 아주 옛날 포타나성을 다스리던 이쿠슈바쿠바왕(태양의 후예라고 뜻)과 두 부인 사이에 5남 5녀가 있었다. 이들은 국내 정치 사정으로 당시 카필라라는 선인이 공부하던 근처에 있는 기름진 땅에 옮겨와 나라를 세웠는 데 누중에 왕이 찾아와서 “오! 샤캬”(나라일을 잘 시작했다)라고 칭찬한 데서 ‘샤캬(Sakya)가 그 종족의 이름(석가족)이 되었고 선인의 이름인 ’카필라‘는 성의 이름이 되었다.
 
여기에서 왕의 막내인 별성왕이 나라를 다스렸으며, 사자협을 낳았고, 사자협은 정바, 백반, 곡반, 감로반 등 사형제를 두게 되었고, 정반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석존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다. ’정반(淨飯)‘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깨끗한 밥‘이라는 뜻이다. 즉, 아직 불교는 없었지만 어떤 두려운 존재에게 깨끗한 밥을 바치며 제사를 올리는 신심을 지닌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 삼계육도 (三界六道) ]
 
< 삼계(三界) >

 1. 무색계(無色界)

 ①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
 ②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③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④ 공무변처천(空無變處天)
 
2.색계 (色界)

(1) 제4선천(第四禪天)

 ① 색구경천 (色究竟天)
 ② 선견천(善見天)
 ③ 선현천(善現天)
 ④ 무열천(無熱天)
 ⑤ 광과천(廣果天)
 ⑥ 복생천(福生天)
 ⑦ 무운천(無雲天)

(2) 제3선천(第三禪天)

 ① 변정천(邊淨天)
 ② 무량정천(無量淨天) 
 ③ 소정천(少淨天)

(3) 제2선천(第二禪天)

 ① 극광정천(極光淨天)
 ② 무량광천(無量光天)  
 ③ 소광천(少光天)

(4) 초선천(初選天)
 ① 대범천(大梵天)
 ② 범보천(梵輔天)
 ③ 범중천(梵衆天)
 
3. 욕계(欲界)

(1) 육욕천(六欲天)

 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② 낙변화천(樂變化天)
 ③ 도솔천(兜率天)
 ④ 야마천(夜摩天)
 ⑤ 도리천(忉利天)
 ⑥ 사왕천(四王天)

< 육도(六道) >

  천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비람강생상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해산달이 가까워지자 마야왕비는 당시 인도의 풍습대로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이 있는 콜리성으로 가게 되었다. 동쪽 문을 나서서 카필라성에서 약 20㎞쯤 떨어진 룸비니에 이르렀을 때 잠시 쉬어 가시려고 행보를 멈추었다.
 
그때 봄을 맞은 룸비니동산에 피어있는 꽃가지 하나를 마야부인이 만지려는 순간 갑자기 산기를 느끼게 되시고 보리수 아래 황급히 휘장을 쳐서 산실을 만들었으며 곧이어 태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가 BC 624년 4월 8일이다.
 
태자는 탄생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난 뒤 한 손으로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한 자이다)이라고 외쳤다. 이 말은 외부의 신이나 어떤 전능자가 따로 있어서 존귀한 게 아니고 인간의 심성 속에 있는 참 내가 가장 위대함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신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인간의 위대성을 잊고 지내던 인류에게 인간 스스로 존귀하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왕은 왕자의 이름을 싯다르타 (Siddharta)라 지으셨는데 이는 “모든 훌륭한 덕이 다 갖춰져 있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라 한다.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아시타선인이 저 동쪽에서 환하게 빛나는 광채를 보고 왕궁에 경사가 난 것을 알았다. 왕궁에 와서 왕자의 상(相)을 보니,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인 32상 80종호가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나는 나이가 먹어서 이 아이가 커서 영광을 누리고 큰 일을 할때에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 슬프다고 했다.
 
그러자 왕은 이 아기가 장차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으니 장차 위대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라고 하고, 또한 만약 태자께서 출가한다면 모든 중생을 다 건질 세상에 둘도 없는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 진리를 설법하는 것을 가리켜 ‘법륜(法輪)을 돌린다’고 하는데, 이 말은 당시 인도사람들이 이상적인 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전륜성왕의 모습과 상통하는 것이다.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난 지 7일만에 불행하게도 마야왕비는 돌아가시고 당시의 풍습대로 이모가 새 어머니가 되어 태자를 양육하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태자를 안타깝게 생각한 왕은 왕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는 뜻과 한편 출가하려는 마음이 생겨날 것을 염려하여 더욱 깊은 사랑과 정성을 쏟았으며 자기가 기대하는데로 성장하여 자신의 뒤를 이어주기를 소원하였다.
 
그리하여 태자는 8세에 왕위계승자로서의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당시 가장 뛰어난 스승들을 초대하여 글과 무예 등 왕자로서의 모든 덕을 기르도록 하였으며, 화려한 궁전과 시중드는 궁녀 등 태자로 하여금 생활하는데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시설하고 사용하기에 넉넉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제왕의 수업은 12세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한편 정반왕은 선인의 얘기를 듣고 태자가 수도하는 사문(沙問)*이 될까봐 걱정하여 사방의 성문을 굳게 닫고 키웠다. 그런데 태자가 자꾸 바깥구경을 하고 싶어하니 동남서북 사대문으로 4번 바깥출입을 허락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다.
 
평소부터도 시간이 있으면 깊은 명상에 잠기길 잘하는 태자는 어찌하여 누구는 편안하게 안락한 생활을 즐기며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어떤 사람은 힘들여 일만 하는 평등치 못한 삶을 이루는것에 대해서, 또 살아있는 것들은 어째서 먹고 먹히며 약육강식의 형태를 이어가면서 괴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깊은 명상에 잠겨 답을 얻지 못하고 궁전으로 돌아온 태자는 날이 갈수록 깊은 사색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정반왕은 선인의 예언이 생각나며 왕자의 출가가 걱정이 되어 주위의 모든 신하에게 매사에 조심토록 명령을 하는 한편 태자의 결혼을 서둘러서 19세(팔상록에는 17세) 되던 해 이웃나라 콜리성주 선도왕(善道王)의 딸 야소다라를 태자비로 맞아들였다.
 
* 태자로서는 결혼이 썩 내키지 않았으나 부왕의 청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결혼을 했어도 그의 의문이 해결된 것이 아니므로, 왕자비의 따뜻한 마음도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창한 날을 골라서 성문밖에 구경을 나가게 되었다. 처음 동문에 나가보니 매우 늙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머리는 희여졌으며 주름살로 가득한 얼굴의 노인을 본다. 또 남쪽의 성문으로 나갔다가 병이 들어 몹시 쇠약해져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을 보게 되고 의문이 일어나 도중에서 돌아오고 만다.
 
어느날은 서쪽 성문으로 나갔다가 죽은 사람의 장례식 행렬과 그 가족들의 슬퍼함을 보고 더욱 깊은 의문과 생, 노, 병, 사에 대한 괴로움을 해결하겠다는 결심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북문을 통해서 나갔다가 만난 수행자의 모습에서 어떤 희열과 안락함을 얻는 듯 했으나 근본적인 의문이 다 해결되지도 않았고, 더욱 출가의 결심은 굳어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무유관상은 사대문 밖으로 나가 인가의 생노병사와 출가 수도인의 생활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모든 철인 (哲人)들이 그러했듯이 영원한 스승은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유하고 자각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 사문은 부지런히 모든 좋은 일을 닦고 나쁜 일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으로 출가수도자의 총칭이다.
  * 태자비는 전생에서 석존의 전생의 인물이었던 선혜와 연등불에 바칠 꽃을 사고 판 사건으로 내생에서 부부의 연을 약속한 구리선녀이다. 그녀도 마하파자파티와 함께 머리를 깍고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유성출가상은 성을 넘어 출가하다는 뜻이다. 점차 출가의 뜻을 굳히며 지내던 태자의 나이 29세에 태자비가 아들을 낳았다는 전갈을 듣고 “오! 라훌라!”라는 탄식의 말을 뇌까리게 되었다. 무의식중에 “라훌라”라고 한 말은 장애라는 뜻으로써 자신의 출가에 장애물이 생겨났다고 판단한데서 나온 말인데, 이로 인해 태자의 아들 이름이 라훌라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를 이을 후계자를 두어야만 자유롭게 출가도 할 수 있다는 사회풍습을 생각한다면 마음놓고 출가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침내 태자는 아들은 얻은 해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없는 삶을 찾아서 마부 찬타카의 도움으로 성을 넘어 몰래 출가를 단행하시니, 이때가 2월 8일로 우리가 말하는 ‘출가재일’이며 이는 곧 부처를 이루시려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설산수도상은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을 말한다. 여기서의 설산은히말라야를 말한다. 히말라야는 인도말로 눈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실제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장소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다. 그러므로 설산이 가진 신성한 의미를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성을 나오신 태자는 지니고 있던 보물을 모두 마부 찬타카에게 주신 뒤 차고 있던 칼로 스스로 머리칼을 자르시고 인근을 지나던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으시어 외모의 형상을 수행자답게 꾸미신 뒤 모든 준비를 갖추셨다. 이렇게 수행자가 된 태자를 흔히 사문 고타마라고 부른다.
 
찬타카와 작별하신 다음 여느 수행자들처럼 숲속을 찾아 들어가시게 된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숲속에 자리잡고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겼으나 이레가 지나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게 되자 당시에 유명한 수행자들의 스승을 찾아 나서기로 하신다.
 
첫 번째로 바가바라는 고행주의를 수행하는 스승을 만났다. 그와 그의 제자들이 수행하는 목적이 천상에 태어나는 것뿐이기 때문에 태자는 못마땅하여 하룻밤을 잔 뒤 다시 스승을 찾아 나가게 된다. 왜냐하면 태자는 죽음을 면할 길을 찾기 위해 출가했거늘, 그들 방식대로라면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먼저 죽어야 하며, 또 그 하늘에서의 수명이 다하면 또 죽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배화주의자였는데, 범천(梵天)*과 일월(日月)과 수화(水火)를 섬기는 자들이다. 이 또한 자신이 닦을 수행이 못된다고 판단하여 그곳을 물러났다. 그리고 나서 당시 가장 명망이 높은 철인(哲人)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 사사(師事)받았다. 이 두 철인은 모두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다다르는 선정법(禪定法)을 수행하는 수정주의자(修正主義)이다.
 
이들은 육체활동을 정지하고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에 의해서만 해탈에 이른다고 믿는 자이다. 싯다르타는 이들에게 각각 지도를 받아 그들이 해탈의 경지라고 하는 최고수행단계까지 이르렀으나, 그 경지도 일단 정신통일의 상태가 끝나버리면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아오므로 수정(修定)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만 했다. 그래서 수정주의자들의 선정이 결코 무고안온(無苦安穩)의 해탈이 될 수 없고, 죽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떠나게 된다.
 
이처럼 명성있는 수도자들을 찾아보았으나 다 허사였고, 이제는 할 수 없이 스승을 찾지 말고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겠다는 비장한 각오 아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부다가야산(설산)이었다. 이곳에서 싯다르타는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심한 육체적 고행을 시작했다. 이때 부왕은 아들을 염려하여 다섯사람을 보냈는데, 이들5인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가 되어 고행을 닦았다.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혹독한 수행을 실천하며 갖가지 고행법은 다 겪어 보시게 된다. 거의 6년에 이르도록 싯다르타는 출가한 후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면서 고행을 하는 가운데 어느 때는 몇 톨의 낟알과 한모금의 물로 하루를 보내시기도 하는 등 초인적 고행을 하신 결과 몸엔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눈은 움푹 들어가고 뺨도 가죽만 남아 결국 고행은 고행대로 했으되 아직도 생사의 번뇌는 끊어지지 않고 생사해탈의 방법도 없어 보이자 태자는 달리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으로써 육체를 잊고자 한다면 아직도 육체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비로소 고행을 통해 육체를 괴롭히기보다는 그것을 맑게 가지는 것이 마음의 고요도 가져오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고행을 중지할 것을 결심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꾼 싯타르타는 우선 지나치게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자 네란자라강에 내려가 몸을 깨끗이 씻고, 인근에 사는 목녀(牧女)가 공양한 우유죽을 잡수셨다. 왕의 명령으로 태자의 곁에서 고행을 지켜보며 같이 따르고 수행하던 5인(교진여, 마등, 구리 등)은 태자가 목욕도 하고 여자로부터 우유죽을 얻어 잡수셨으니 그가 이제 고행을 포기했다고 실망하고 태자의 곁을 떠나 녹야원으로 가버렸다.
 
고행까지 그만 두었다는 것은 당시에 성행했던 수행법을 모두 버린 셈이며, 슬기로운 판단력과 과감한 결행과 불굴의 의지로써 과거 관습의 타성과 모순성을 정확히 꿰뚫고 힘차게 일어나신 것이다. 이리하여 마침내 불교의 세계가 열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남은 싯타르타는 커다란 보리수 아래의 반석에 길상초를 푹신하게 깔고 앉아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알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이렇게 하기를 이레째 되는 날까지 심심삼매*에 들어가셨다.
 
 * 범천이란 색계의 초선천으로 욕계의 음욕이 없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고 고요한 곳이다. 범중천, 범보천, 대법천의 세 하늘이 있다.
 * 삼매란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움직이지 않게 하여 바르게 하므로 망념에서 벗어난 적정의 상태이다.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서 마군을 항복받는다는 뜻이다. 태자가 삼매경에 드니, 마왕 파순이 유혹한다. 보리수 아래서 조용히 명상에 잠겨 계시는 태자의 32상과 80종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밝게 빛났고, 한 길이나 되는 둥근 광명이 몸 전체에 더욱 더 크게 빛났다. 그리고 미간백호상공명으로 온 우주세계를 비추자 욕계의 제6천 마왕궁에도 광명이 눈부시니 그는 32가지 악몽을 꾸고 크게 놀라 태자의 성불을 결사 방해하기로 했다.
 
마왕은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타나시면 삿되고 악한 무리인 자신들이 살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마녀들을 동원하여 태자를 유혹하고 맹수 나찰 아귀를 보내고 8만 4천 마군중을 파견하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자 마왕 파순은 항복하고 태자에게 귀의하고 만다.  이렇게 이레째 되는 날 찬란한 새벽별이 반짝일 때 마왕들에게 항복 받으시고 마침내 크게 깨달으시게 되는데, 이때 개달으신 것이 연기법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이치)이며, 중도의 진리이며, 이로써 드디어 우주가 내 자신이고, 내 스스로가 우주임을 알게 되신 것이다.
 
그동안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현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고통을 주는 주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시작했고, 또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서 냉정하게 분석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태어난 후 왕자로서의 호화로운 생활과 출가하여 자기 몸을 학대하던 일, 고요히 명상에 잠겨 삶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도피적 생활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 이전의 사람들이 개발한 방식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막상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종국에 싯다르타가 얻은 결론은 우리가 영위하는 삶속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사이는 서로 연관성이 있어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에 의해 모든 문제들이 발생하며, 이렇게 발생한 문제들은 객관적인 법칙에 의해서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는 감정의 최초 원인은 객관적인 진리에 대해 무지(無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부처님은 훗날 무명(無明)이라고 설법하셨다. 인간이 느끼는 괴로움의 원인을 객관적인 밑뿌리부터 제거할 때 그것으로 인한 모든 현실의 괴로움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행복한 상태인 열반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새벽녘이 밝아올 무렵 고타마 싯다르타는 긴 방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다.
 
온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생명체이건 무생명체이건 서로 연관을 가지며 서로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이 그러한 것들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훗날 부처님은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를 바로 연기(緣起)라고 하시고, 상호연관되어 돌아가는 객관세계의 법칙을 잘 관찰하고 그에 따라 생활할 때 우리들의 삶이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설하셨다. 석존께서 그의 나이 35세때 마가다국의 붓다가야라는 곳의 보리수에서 깨달으신 내용이 바로 이 객관세계의 법칙인 것이다.
 
이처럼 태자는 드디어 큰 깨달음을 성취하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푼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이것은 출가후 6년만의 일이며 태자께서 35세 되던 12월 8일 보리수나무 밑에서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날을 기리어 부처님의 성도일로 정했으니, 우리도 적극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들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신(神)이나 자기만의 쾌락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통찰력과 그에 입각해서 살아가는 것만이 행복하고 안락하며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기존의 사유방식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최고의 즐거움(=열반)인 것이다.
 
(7) 녹원전법상 (鹿苑傳法相)
 
  녹원전법상이란 녹야원에서 불법을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께서는 그곳에서 21일을 더 머물러 계시며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시고 또 깨달으신 바를 점검하신 뒤 이것을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다가 범천(梵天)의 권천(勸請)에 의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야겠다는 대자비심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전법의 길로 나서게 되신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대자대비가 없는 각자(覺者), 즉 진리만 깨달은 이를 부처라고 보지 않는다.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된 고타마 싯다르타는 법열*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실로 거룩한 부처님의 길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은 누구에게 처음으로 이 법을 전할까 생각하시며 자신의 세 스승을 떠올렸으나 그들은 이미 고인이 된 것을 아시고, 다음은 같이 수행하던 5인의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가시게 된다.
 
처음에 부처님이 타락했다고 여기고 떠났던 이들 5인은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부처님을 뵙더라도 인사조차 하지 말자고 약속했으나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자 그 거룩하신 모습에 절로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자리를 내드리며 최고의 공경을 드리게 된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수행자에게 비로소 가르침을 폈으니, 이것을 불법의 첫 펼침이라 하여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여기서 출가수행자는 욕락(慾樂)과 고행의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할 것과, 사성제와 팔정도를 설하심으로 그들을 깨우쳐 진리의 세계에 눈뜨게 하셨고, 교진여 등으로 하여금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제자가 되게 함으로써, 불교가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고, 최초로 불(가르침을 연 부처님)․법(부처님의 가르침)․승(불법을 받들고 실천하는 수행자 집단)의 삼보(三寶)가 구족한 승가의 성립을 보게 된다. 그때 근처 어느 부호의 외아들 야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는데, 야사의 부모와 아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재가제자(在家弟子)가 된다.
 
이들이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의 시초이다. 또 야사의 친구 50명도 감화를 받았는 데 부처님의 제자 사문(沙門)이 되었다. 그 후로도 부처님은 왕사성과 사위성 그리고 고향 카필라를 왕래하며 직접 가르침을 펴셨고, 바라나시와 베사알리와 코삼비 등에도 가서 교화하셨다.
 
당시 인도문화의 중심지인 마가다국의 왕사성으로 가서 유명한 종교가였던 가섭 3형제를 교화하여 제자로 삼으셨는데, 이들 3형제는 부처님보다 훨씬 연장인 늙은 종교가였음에도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을 보고 백성은 물론 왕사성 국왕과 많은 신하들이 놀라 부처님께 가르침을 펼 수 있는 사원을 지어 드렸는데 이 절이 불교사원의 시초가 되는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이로부터 불교는 왕사성을 중심으로 크게 교세가 확장되었다.
 
부처님께서 직접 교화한 곳으로는 왕사성과 사위성이 가장 중심지이며, 북쪽으로는 카필라, 남쪽으로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 동족으로는 참파, 서쪽은 코삼비 등이다. 유명한 설법장소로는 최초 서럽지인 녹야원, 왕사성의 죽립정사와 영축산,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녹자모강당(東園精舍) 등인다.
 
부처님도 45년간 수많은 중생을 교화하셨는데, 그 가운데 열명의 훌륭한 제자가 있었고, 그 밖에 항상 따라다닌 제자만도 1,250명에 다다랐고, 한번 설법하면 8만이 모였다고 기록되어있다. 불제자에는 계급의 귀천도 빈부의 차별이나 인종 구별도 없었다. 오직 화합과 평등과 진리(=법)에 의한 질서만이 존중되었다. 그래서 당시 종교계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여성출가수행자도 인정되었다.
 
부처님은 우주 인생의 보편타당한 진리를 올바르고 참되게 깨달은 정등각자이며 또한 자율적이고도 자주적인 원만한 인격을 갖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시다.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참삶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일깨우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진리를 증득하여 해탈한 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많은 지방으로 가서 불법을 알리고 교화하도록 했다.
 
그래서 제자들에 의해 더욱더 널리 알려진 불교는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동쪽으로 갠지스강 하류까지 전해졌고 서쪽으로는 지금의 봄페이 북방인 아라비아해 연안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부처님은 교화의 방법으로 위의교화법(威儀敎化法)과 설법교화법(說法敎化法)을 사용하셨다. 위의교화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방에게 감화를 주고 마음을 일깨우는 방법이다. 말이 없으면서도 말로써 가르치는 것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기 때문에 이를 달리 상호설법(相互說法)이라고 하는데, 처음 녹야원에서 5인 수행자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일과, 배반자 데바닷타와 아자타삿투왕이 풀어놓은 술 취한 코끼리를 굴복시킨 이야기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러 지어서 하는 몸가짐이 아니고 자연히 풍겨나는 인격과 심
덕(心德)의 발로인 점이 특징이다.
 
두 번째 교화법인 설법교화는 언설(言說)에 의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게송(偈頌)의 운문(韻文), 산설(散說), 비유(譬喩), 인연담(因緣談), 문답법, 전의법(轉意法)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응용된다. 이 중에서 인연담은 상대에게 자신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과거 회고 및 미래에 선과(善果)를 거두도록 하여 생활을 향상되게 하는 수단이다. 문답법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하는 방편인데, 상대의 질문이 적절하면 그대로 긍정해주는 것, 질문이 이치에 맞는가 그른가를 먼저 분별하고 그에 알맞은 답을 하는 것, 질문을 받고 오히려 반문하여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도록 하는 것, 질문이 이치에 합당치 않고 아예 쓸모가 없을 때는 침묵해버리는 것 등이다.
 
전의법(轉意法)은 상대의 견해를 처음부터 부정하지 않고 교묘히 새로운 의의를 갖게 하는 것이다. 가령, 바라문교의 이상은 생천(生天)하는 것인데, 부처님은 이러한 생천설을 직접 부정하지 않고 생천하기 위해서는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야 한다고 가르쳤기에 실질적으로 생천보다 더 긴요하고 소중한 현실에 충실을 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당시 기성종교인들은 젊은 부처님과 불교세의 확장을 두려워하여 음해공작을 한 예도 있는데, 임신한 여인을 꾸며 대중 앞에서 부처님의 아이라고 모함하거나 불구덩이나 독약을 이용해 부처님을 음해하려는 경우, 또 탕녀를 죽여 묻어놓고는 불교교단에서 한 짓이라고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비방하였으나모두 실패하고 도리어 부처님은 유명하게 될 뿐이었다.
 
  * 범열이란 마음을 깨달아 지혜를 얻는 순간, 또는 그것을 남에게 가르칠 때 얻는 기쁨을 말한다.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쌍림열반상은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는 의미다.출가하시어 6년만에 성도하신 후 45년이라는 세월을 갠지스강유역을 중심으로 중생제도와 교화하시는 일로 일생을 보내시어 어느덧 80세가 되셨을 때 노쇠한 몸으로 왕사성에서 사위성으로 가시는 도중 바이샬리에 이르시어 제자들에게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시겠다”고 예언을 하시고, 이어 금세공장 춘다의 공양을 받으시고 다시 병을 얻게 되신다.
 
부처님은 바이샬리에서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놓고 “무엇이든 연기의 법칙, 인과의 법칙 그리고 삼법인의 내용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벗어나면 설하는 사람의 견해이지 내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설하시며 불법이 왜곡될 것을 경계하여 정법의 판단기준에 관해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시며 룸비니쪽으로 다시 길을 떠나셨다. 이렇게 쿠시나가라에 도착하시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해 눕고 싶다. 저기 사라쌍사 아래에 가사를 4겹으로 접어 깔아다오. 나는 오늘밤 여기에서 열반에 들겠다” 이렇게 하여 마지막으로 모여든 제자들에게 열반경을 설하신 후 열반에 드시니 이때가 2월 15일 즉 열반 재일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누구에게 의지하여야 되겠습니까? 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나의입멸(入滅)을 슬퍼하지 말라. 무릇 육신은 반드시 멸하는 법이니 내 비록 육신은 멸한다고 하나 내법신(法身)은 멸하지 않으니, 법신이란 내가 일생동안 설(說)한 법(法)*과 율(律)* 중에 빛나고 있는무상의 정각(正覺) 바로 그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별한 후에 너희들은 법과 율을 큰 스승으로 삼아 살도록 하라.”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몸과 스스로의 마음을 알고 또 법을 알고 나서 탐욕과 근심과 슬픔을 제거하고 “남에게 의지말고 마치 강 가운데 모래톱과 같이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며, 법에 의지하여” 수행을 계속해 나간다면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훈계하는 듯한 말씀을 남기셨다.
 
여기서 모래톱은 등불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스스로 등불을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 열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자 가섭에게 부처님은 말없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시며 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이 영원하심을 만중생에게 또 알리셨다.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의 모습을 보이셨으나 죽음을 의미하는 열반에 드시지는 아니한 것과 본래로 진리의 몸이 시기에 여여부동하심을 입증한 것이다. 부처님은 신묘불가사의한 사리를 남기셨는데 정골 사리가 양산 통도사를 비롯한 5대 보궁에 봉안되어 있고, 8섬 4말의 사리가 8개국에 한섬씩 분배되었고 후일 인도 아쇼카왕에 의해 인도 전국에 8만 4천개의 사리탑이 세워지게 이른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교단은 가섭존자가 중심이 되어 500명의 대아라한과 성전편찬작업을 하였는데, 이것을 결집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집은 이도불교사상 수차례 행해졌으며 불멸 직후에 제 1회 결집이 있었고 그 후 100년마다 3번의 결집이 더 행해졌다. 1회 결집 후 200여년이 지난 아쇼카왕 때 제 3회 결집이 행해져 삼장(三藏) 즉, 경장(부처님의 말씀), 율장 (부처님의 계육), 논장 (스님네의 학술논문)이 수집되었고, 오늘날에도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생생히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 불설(佛說)중에서 교리와 사건에 관한 것이 법이다.
  * 출가자들의 행위한 관한 규정과 승가의 운영과 규율에 관한 부분이 율(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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