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탐구 - 제2부 삼보(三寶) - 3장 석가모니 부처님 - 부처님의 위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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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탐구 - 제2부 삼보(三寶) - 3장 석가모니 부처님 - 부처님의 위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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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처님의 위신력
 
(1) 여래십호 (如來十號)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어 복혜(福慧)의 무한한 공덕으로열 가지 이름을 가지셨으니 이를 여래십호라 하며, 이를 통해 부처님의 능력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이름들만 외워도 염불이 절로 되며 암송이 쉽게 된다. 법화경에는 다음과 같은 여래십호가 자주 등장하니 알아둔다.
 
① 여래 (如來)
 
  이 말은 범어로 ‘타타가타(Tathagata)인데, ’타타‘는 온다, ’가타‘는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타‘는 진여(眞如)*의 세계에서 여실히 오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여래의 여(如)는 여여(如如) 또는 진여(眞如)의 줄임말로, 쉽게 말하면 그 시간 그곳에서 취해야할 가장 마땅한 상태, 가장 원만한 자세, 아무에게도 해를 끼침이 없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안주해 참된 이익을 주는 모습을 말한다. 그러한 자세, 상태, 모습에 도달했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 여래(如來)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 판이하다. 실수와 잘못과 후회의 연속으로 꾸며진 우리들 범부(凡夫)의 삶과는 달리 여래는 이미 생사(生死)를 초월하여 여여한 마음으로 사는 비범인(非凡人)이요, 대자유인(大自由人)이요, 인생의 승리자인 것이다. 부처님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우주 삼라만상의 법을 알고 그 법대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이름 가운데 여래를 제일 처음에 두고 있고,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을 주로 석가여래라고 칭하는 이유도 그 이름의 의의가 큰 때문이다.
 
  * 진여는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개념의 하나로서 우주만유에 보편하는 상주불멸(常住不滅)의 본체이다. 논리적이거나 사상적 개념 또는 언어나 문자로는 미칠 수 없고 오직 깨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다.
 
② 응공 (應供)
 
  이것은 아라한의 번역으로, 응수공양의 뜻으로 남의 공양을 응당히 받으시는 분을 상징한다. 일체 번뇌를 소멸하시며 천인(天人)이 공양하니 이에 응신하신다는 뜻이다.
 
③ 정등각 (正等覺)
 
  이는 삼약삼붓다의 번역으로 올바로 모든 것을 다 환히 깨달았는 뜻이다. 그래서 정변지(正邊知)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집멸도의 모든 법을 아시니 온갖 참됨과 거짓을 살피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범어의 ‘삼약’은 훌륭하다. 완전하다라는 뜻이다. 삼약삼붓다는 올바로 두루두루 모든 것을 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낮은데 앉아있어도 높은데서 보는 것처럼 전부 다 속속들이 보고 알며, 그러면서도 이야기 안하고 혼자서 미소짓고 소리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훌륭한 인격자이다.
 
④ 명행족 (明行足)
 
  비디야차라나삼판나의 번역이다. 명(明)과 행(行)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명행족으로 번역되었다.모든 것을 다 보는 눈을 가진 천안(天眼), 과거생, 현생, 내생을 다 아는 숙명(宿命),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아는 누진(漏盡)의 밝음을 삼명(三明)이라 하는데, 명(明)은 모두 꿰뚫어 훤히 지혜롭게 다안다는 말이다. 행이란 신구의(身口意)의 행업을 말한다.
 
즉, 명행이 갖추어졌다 함은 계정혜(械定慧)의 삼학(三學)에 의해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삼명육통을 얻으셨다는 의미다.
 
육신통(六神通)은 위의 삼명에 천이통(모든 것을 다 듣는 귀를 가진 것,) 타심통(상대방의 마음을 보는 것), 신족통(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발을 얻는 것)을 말한다. 육신통 가운데 누진통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왕 파순, 천상의 왕, 극락의 사람들도 갖추고 있으되, 누진통은 오직 부처님만 지니고 계신 능력이다.
 
 ⑤ 선서 (善逝)
 
  선서는 범어 ‘수가타’의 번역인데, ‘수’는 잘이라는 말이고 ‘가타’는 가다, 즉 잘 가신 분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선서(善逝)로 번역되었는데, 서(逝)는 ‘가다’의 의미이다. 부처님은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잘 가신 분, 사바세계로부터 잘 가신 부처님, 모든 중생의 갈 길을 잘 밝히신 분이심을 뜻한다.
 
⑥ 세간해 (世間解)
 
  ‘로카비드’의 번역이다. ‘로카’는 세간(世間)이고 ‘비드’는 안다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신다는 의미다. 즉, 세간의 모든 중생사를 결정하고 고민해 주시는 분이심을 가리킨다.
 
 원래 ‘로카’라는 말은 ‘깨어지게 되어있는 것’, ‘오래 못가는것’등의 의미가 있는 말인데, 세간살이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이치를 배운 불자들은 미리미리 대책을 세우며 살아야 될 것이다. 세간란 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기에 파란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⑦ 무상사 (無上士)

  최상의 인간이라는 말로,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원어는 ‘아눗타라푸루샤’이다. 한자로 푸류샤를 사(士)로 번역했지만 실은 사람(人)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광명, 영원한 진리를 체득하신 부처님, 광명이며 진리당체이신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을 의미한다.
 
 ⑧ 조어장부 (調御丈夫)
 
  푸류사다미야사라틴의 번역으로, ‘다미야’는 길들인다. ‘샤라틴’은 대장부,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다. 즉, 장부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잘 길들이는 대장부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조어장부라고 함은 여러 가지 적절한 방법과 가르침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조절하고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뜻한다.
 
  ⑨ 천인사 (天人師)
 
  샤스타 데바마누시야남의 번역으로서 ‘샤스타’는 스승이라는 말이다. 데바는 신, 마누사야는 사람이고 그 끝은 복수의 소유격이다. 즉, 신과 인간들의 스승이라는 의미다. 그들을 무한한 행복, 영원한 광명으로 인도하는 모든 육도 중생의 스승이다.
 
  ⑩ 세존 (世尊)
 
  세존이란 바가바트의 번역인데, 복덕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말은 옛날부터 있던 말로, 여래십호 가운데 바가바트라는 말만은 다른 종교에서도 쓰던 말이고, 그 밖의 9가지는 불교의 독특한 말이다. 붓다라는 말은 자이나교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여래십호가 아니니 별문제다.
 
 부처님 당시 제자들은 스승을 세존이라고 불렀다. 이는 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시고 그 은혜를 중생에게 베푸시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존귀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석존이라는 말은 석가세존의 준말이고, 세존 앞에 불(佛)을 붙혀 불세존(佛世尊)이라고도 한다. 불(佛)은 불타의 준말로 각자(覺者)라는 말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스스로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시는 각행(覺行)이 원만하신 분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을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스스로 깨닫고 있다는 면에서 보면 깨달은 지혜가 본지(本旨)를 이루고, 또 남을 깨닫게 해준다는 면에서 보면 자비(慈悲)가 본지를 이룬다. 이렇게 자각의 지혜와 각타의 자비, 이 두가지가 모자람없이 만족된 행위를 각행원만이라고 한다. 또한 부처님에게는 특유한 덕성(=공덕)이 있는데 이것에는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 18불공법(不共法), 32상(相) 80종호(種好)등이다.
 
(2) 십력 (十力)
 
  「구사론」27, 「잡아함경」, 「관무량수경」등에 십력이 소개되었는데 일체를 요지하시는 부처님은 신묘불가사의한 능력을 행하신다. 이 능력들은 모두가 아는 힘이다. 그만큼 부처님은 잘 아시는 분이고 지혜로운 분이심을 의미한다.
 
 ① 지시각비처력 (知是覺非處力)
 
  이것은 시(是)를 알고 비(非)를 아는 것, 시처(是處)와 비처(非處)를 아는 힘을 말한다. 간단히 시처비처력(是覺非處力)이라고 하면 외우기 쉽다. 즉, 옳고 그름(시비)을 분명히 아시는 힘을 말한다. 옳은 것을 도리(道理)라고 하고 그른 것을 비리(非理)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른 도리와 바르지 못한 도리를 여실히 알아서 잘 분별하는 힘이다. 이는 지혜의 힘을 가지신 부처님의 능력이시다.
 
② 지업보력 (知業報力)
 
  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얻는 모든 업의과보에 대해 그 이유와 원인을 아시는 능력이다. 「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간단히 업력이라고만 했다. 업과 과보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
 
 ③ 지제선삼매력 (知諸禪三昧力)
 
  가지가지 선삼매를 아는 힘, 모든 해탈과 선정을 다 통달하여 아시는 능력이다. 간단히 정력(定力)이라고 할 수 있다.
 
④ 지타중생제근상하력 (知他衆生諸根上下力)
 
  중생들의 근기(根機)의 상하를 아는 힘으로, 줄여서 근력(根力)이라고 한다.
 
 ⑤ 지타중생종종욕력 (知他衆生種種欲力)
 
  중생의 욕구나 이해의 정도를 아는 힘으로서, 줄여서 욕력(欲力)이라고도 하는데, 중생들의 갖가지 발원을 아는 힘이다. 잠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십력이 모두 아는 힘과 관련된 능력이라고 했는데, 보다시피 우선은 알아야 그 다음에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해준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발원까지도 알아서 살펴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발원(欲)과 욕심(慾)을 구별해야 한다. 발원이 없는 인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부처님도 초년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발원을 품고 이것을 위해 얼마나 끈기있게 정진하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⑥ 지세간종종성력 (知世間種種性力)
 
  세간 중생의 성격을 아는 힘이다. 여기서 성(性)이란 마음바탕을 가리킨다. 성(性)과 욕(欲)은 약간 차이가 있는데, 중생의 성류(性類)에 따라 성력(性力)은 각기 달라 그들이 머무는 세간도 각기 다른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아시는 능력을 말한다.
 
⑦ 지일체도지처상력 (知一切道智處相力)
 
  이것은 업에 의해 나타나는 세계를 아는 힘이다. ②의 업력(業力)과는 구별하여 이것을 과력(果力)이라고 한다.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업을 지으며 살게 되는데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업)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도록 하는 힘에 해당된다.다음 세가지 능력은 6신통의 앞 세가지이다.
 
⑧ 지숙명력 (知宿命力)
 
  숙명을 아는 힘, 중생의 과거세를 다 기억하여 아시는 지력(知力)을 말한다.
 
⑨ 지천안력 (知天眼力)
 
  중생이 나고 죽음을 보고 미래의 천함과 고귀함, 행과 불행을 각각 그 업에 따라 다 아시는 능력이다.
 
 ⑩ 지누진력 (知漏盡力)
 
  번뇌가 다 없어진 것을 자각하는 힘이다. 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끊는 열반을 스스로 아시는 능력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여래십호의 공덕을 갖추시고 십력육신통을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다. 이는 오직 중생을 향한 대자재비심의 발현이다.
 
(3) 4무외 (無畏)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에 있어서 두려움을 갖지 않는 다는 말로, 이것을 자신감할 때의 자신(自信)이라고 번역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① 법무소외 (法無所畏)
 
  여기서 법(法)이라는 것은 모든 현상이라는 말인데, 일체 법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게끔 되어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모든 현상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자신을 갖추신 것이다.
 
② 누진무소외 (漏盡無所畏)
 
  누(漏)는 번뇌이고, 누진은 고통의 원인인 번뇌가 다했다는 뜻이다. 누진무소외는 모든 번뇌, 모든 잘못을 다 끊어버렸다는 자신을 갖추신 것이다.
 
③ 설장도무소외 (說障道無所畏)
 
  설장도는 장도(障道)에 관해 설하는 것이고, 장도는 도를 이루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가르킨다. 즉 번뇌이다. 끊어야 하는 번뇌에 대하여 설법하는데 있어 조금도 의심이 없는 자신을 갖추신 것이다.
 
 ④ 설진고도무소외 (說盡苦道無所畏)
 
  이는 번뇌를 끊는 쪽으로 인도하는 도리를 틀림없이 설하는 자신을 갖추고 계심을 뜻한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사성제와 팔정도가 있는데, 바로 팔정도 (고통을 멸하는 길)를 자신있게 설법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한것이 설진고도무소외이며, 고통의 원인이 되는 탐진치(貪瞋癡)에 대해서 자신있게 설할 수 있는 자신이 바로 설장도무소외이다.
 
그러므로 4무외는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어서 자신에게나 이웃에게나 자신만만해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부처님을 사자(獅子)라고도 하며, 부처님은 ‘사자후(獅子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4) 18불공법 (不共法)
 
  부처님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18불공(공통되지 않는)의 공덕이 있다. 옛날에는 십력, 사무외, 삼념주(三念住), 대비(大悲)를 합쳐서 18불공이라고 했으나 대승불교에 와서는 다른 특징을 들어서 말한다.  대승불교이전에 18불공의 세가지에 해당되었던 삼념주(三念住)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 18불공을 설명하기로 한다.
 
삼념주(三念住)는 부처님의 정념(情念), 정지(靜止), 올바른 지혜에 편안히 거하고 계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항상심(恒常心) 또는 평등심(平等心)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는 것인데, 만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항상 평등한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즉, 삼념주는 평등한 마음에 거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승불교에 와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18불공이라고 한다.
 
①~③은 신구업 삼업에 관해 과실이 없는 것으로, 신무실(身無失), 구무실(口無失), 의무실(意無失)이다. 즉, 몸과 말과 뜻에 과실이 없다는 말이다.
④ 무이상 (無異想) : 중생에 대한 평등심
⑤ 무부정심 (無不定心) : 선정에 의한 마음의 안정
⑥ 무부지기사 (無不知己舍) : 모든 것을 포용하고 버리지 않는일 ⑦~⑪은 중생제도에 있어서 다음의 다섯가지에 감퇴가 없는 것을 일컫는다.
 
중생을 제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다는 욕무감(欲無減), 정진하는 힘이 조금도 줄지 않는 정진무감(精進無減), 염력이 줄어들지 않는 염무감(念無減), 선정의 힘이 줄어들지 않는 정무감(定無減), 지혜도 줄어들지 않는 혜무감(慧無減)등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⑫ 해탈무감 (解脫無減)이 더해진다. 이것은 해탈로부터 뒷걸음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⑬ 신업수지혜행(身業隨智慧行), ⑭ 구업수지혜행(口業隨智慧行),  ⑮ 의업수지혜행(意業隨智慧行) 등은 중생제도를 위해 지혜의 힘으로 삼업을 나타내는 공덕인데, 이것은 6신통 중의 신족통(神足通), 타심통(他心通)과도 유관한 것이다. 끝으로  <img src=16.gif> 신업수지혜행(身業隨智慧行), <img src=17.gif>구업수지혜행(口業隨智慧行),  <img src=18.gif> 의업수지혜행(意業隨智慧行)이 있다. <img src=16.gif>~<img src=18.gif> 도 역시 지혜의 힘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를 알고 걸림이 없는 공덕을 말한다. 이것은 6신통 중의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과 관련된 공덕이다.
 

부처님의 32상과 80종호에 대해서는 앞장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석존의 생애와 공덕에 관해 배웠다. 불교도의 신행생활은 석존에 대한 경외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생애와 능력에 대한 지식은 불교입문에 꼭 필요한 정수와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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